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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끝났다! 어느새 12월이 되었고 2007년도 그렇게 흘러갔다. 새벽 늦게까지 교과서에 죽어라고 매달릴 때는, ‘이 끔찍했던 기억이여!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교과서가 끝난 후에 맞닥뜨리는 ‘지금’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데드라인을 향해 시속 200 km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바빴다면 대체 어느 정도 바쁜 것이었을까. 적어도 자신에게만은 부끄럽지 않게 질주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주변의 모든 것은 뿌옇거나 적어도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정반대가 되고 말았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은 내게로 왔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내게 이야기를 건넸다.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러닝머신에서 이제 막 내린 것처럼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어딘가에 쉽게 부딪히고 상처가 생기고 며칠이 지나도록 떨어지지 않은 딱지처럼 그렇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래, 12월은 차갑고 때로는 비 같은 눈발이 날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마음만은 식질 않아서 그 안에 사랑이 자라고 기쁨이 터져 넘치기를 바래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나의 삐침을, 나의 이 소심함을 용서해 다오!
생각해보면 나는 그에게 시집을 선물한 적이 없다. 문태준의 시집 <가재미>가 나왔던 작년 여름, 퇴근길에 여느 때처럼 G역에서 만나 병원에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플랫폼에서 J를 만났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J에게 이 시집을 건네고 말았다. 계속 손에 들고 있다가는 어쩌면 곧 마주할 그에게 이 시집을 건넬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었다. 너무 좋은 시집이었지만 그가 이 시집을 읽는다면 얼마나 슬퍼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p.40) 누울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차마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아, 이제 이게 정말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p.64). ‘무늬는 오래 지닐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p.75), 변하는 것은 다만 사랑도 속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쓸어내린다’(p.85).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p.98). 하지만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p.99)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래, ‘나는 다만 어긋나는 감각의 면 위를 물뱀처럼 오래 걷는다’(p.81).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 앓고 있는 사람이다.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그래야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p.51,53). 시인은 모든 것을 ‘얻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새와 아내와 한 척의 배와 내 눈앞의 꽃과 낙엽과 작은 길과 앓는 사람과 상여와 사랑과 맑은 샘과 비릿한 저녁과 나무 의자와 아이와 계절...’은 ‘자신이 바깥에서 가까스로 얻어온 것들’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궁극에는 돌려보내야 할 것’(p.책 뒷표지)임을 시인 스스로도 잘 안다. ‘오오 내가 사랑하는 이 평면의 힘!’(p.12)으로 그는 최대한 이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p.11)를 즐긴다. 고요, 침묵, 비어 있음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시 얻어오는 것뿐이다. 그래서 ‘울울창창한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진다’(p.99). 그러므로 ‘극빈’하여도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려도’(p.90) 시인은 ‘마음에 벼린 절벽을 세워두듯 (선 채로 말라 죽었다는) 강대나무를 생각하며 가난한 생활을 견딘다. 초혼처럼 강대나무를 소리내어 떠올려 자신의 누추한 생활의 무릎으로 삼는다’(p.56, 57). ‘저 풍경의 바깥’을 내다보며 ‘살쪄 웃는다’(p.17).
문태준, 가재미, 문학과 지성사, 2006 문태준 시인의 시 몇 편...
재밌게 읽었다. 가끔은 그의 교술(敎述)이 눈에 거슬리고 또 눈에 거슬리고 살짝 짜증이 날 뻔도 했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비교적 잘 짜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심을 찬양함> 반복되는 우연, 이게 운명일까 아닐까, 이 의심을 기꺼이 믿어도 좋을까. 의심하지 말라. 인생은 적당히 속아주는 것이다. 알면서도 속는 것이다. 그래야 속이 편하고 인생이 아름다워 보인다.
<고독의 발견> W 도시는 원주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도의 한 가운데가 뚫린 인생은 ‘잠파노’와 ‘젤소미나’의 유랑극단처럼 허허롭고 부질없고 한 발자국 늦다. 자신의 모습을 찾아 다다른 곳, 후회와 눈물이 그치지 않은 곳, 고독의 발견.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미의 기준은 시대가 말한다. 어린 시절, 이혼으로 헤어진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바라본 그림, 바로 보띠첼리의 비너스. 그 비너스에 대한 환상을 품었건만 정작 자신에게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온몸이 울퉁불퉁한 살집으로 봉긋한 빙하기 시대의 비너스가 더 가까이 다가섰다. 아버지의 수술, 그리고 다이어트 결심. 뚱뚱한 아이의 기억을 간직한 채 떠나버린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나를 멸시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날씨와 생활> 그 순간에는 정말 엄청나고 두렵던 일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배시시 웃고 있는 화창한 날씨로 바뀔 때가 있다. 어렸을 때의 기억, 목덜미에 선명하게 남은 손자국처럼 깜짝깜짝 놀라는, 기어코 세상을 놀라게 할 그런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맘껏 상상을 하는 어느 몽상가 소녀의 이야기. <지도 중독> 인생이란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처럼, 그저 선을 따라만 가면 되는 것일까. 어떤 유형유형의 사람들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불안함의 한 징후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어떤 확실함, 지도를 보고 현재 자신의 위치를 좌표로 삼아야지만 적이 안심이 되는 그런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곰은 어디에서 나타날지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문득 ‘와일드 로즈’ 맥주를 마시는 곰을 데려다가 나도 같이 한잔 하고 싶어진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한 사람은 자살하고 또 한 사람은 독일로 떠나고 또 한 사람은 현실에 악착같이 살아 붙는다. 하지만 현실에 살아남은 '나' 또한 J로 분열되어 있다. 후배 J는 더 이상 달라질 것도 없고 어찌할 수도 없는 현실을 벗어 던지고, 유리 가가린이 불안과 고독, 암흑의 우주 한 가운데에서 홀로 신비롭게 떠 있는 별, 지구를 마주하듯이, 지나간 시간, 현재의 모습을 대면하기 위해 완전한 단절을 선택한다. 우리의 귀환 지점은 리버 쎄느. '지구는 푸른 빛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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